고대사

동이족의 대영웅 서언왕徐偃王

대동이 2007. 3. 30. 15:18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이족은 '동방의 오랑캐'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이족의 참 뜻이 아니다. 『설문해자』를 보면 동이족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 그 이름 답게 고대 우리 조상들은 말 잘타고 활 잘 쏘았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궁에서 석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동이족=한민족이라는 얘기는 과장된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동이족의 한 일원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중국사서는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을 동이의 나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동이족의 대영웅으로 우리는 지나(중국)의 공손헌원과 싸운 치우천왕(蚩尤天王:배달국 제 14세 한웅인 자오지 한웅)을 든다. 하지만 우리는 동이족의 또 다른 대영웅을 모르고 있었다. 이 분은 고구려 유민인 이정기 장군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기억 속에 잊혀진 인물이다. 그 인물은 바로 서이족(徐夷族)의서언왕(徐偃王)이다.

서언왕은 중원에 진출한 동이족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신시 배달로부터 개시된 동방민족(東方民族:동이족)의 중원개척사는 발해 연안을 발판으로 단군조선 때 까지 계속되었다. 한족 문헌에 동이 사람으로 명시된 인물은 신시(神市:배달국)의 태호복희(풍씨로, 동이족의 한 갈래인 풍이족의 조상), 염제신농, 청구(靑邱:배달국을 달리 이르는 말)의 치우천왕, 소호금천, 지나의 성군으로 알려진 순임금, 주 무왕을 도와 은 주왕을 토멸한 강태공 여상, 그리고 마지막 인물이 바로 지나족들이 치우천왕만큼 두려워한 서언왕이다.

☆☆ 서언왕에 대해 들어가기에 앞서, 태호복희, 염제신농, 치우천왕, 소호금천, 순임금, 강태공 여상이 동이족이 맞는 지에 대해 고찰하기로 하겠다.

지나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고사변』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동이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皓:복희), 제준(帝俊), 제곡(帝?), 제순(帝舜), 소호(小皓), 그리고 설(은 시조)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이다. "

고사변을 보면 지나인들이 자신들의 시조라 여기는 이들의 근원이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한단고기』를 보면 염제신농의 출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웅씨(雄氏)에서 갈라져 나간 사람 중에 소전(小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안부련 환웅(安夫漣 桓雄)말기에 소전은 명을 받들어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하고 있었는데 그의 아들 신농(神農)은 여러 가지 풀을 혀로 맛보아 약을 만들었다. 그는 뒤에 열산(烈山)으로 옮겨갔다."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에 의하면 치우천왕은 배달국 14세 환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사기 정의 편에는 "구려(九黎)의 군주는 치우(蚩尤)라 했다." 하였고, 사기 집해에는 "치우는 옛 천자다"라고 하여 치우천왕이 동이족의 제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지나의 태평성대를 이룩한 순임금이 동이족이라는 사실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뿐 아니라 지나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맹자 』이루장구 하편을 보면 순임금이 동이족임을 밝히고 있다. "순은 제풍에서 태어나 부하로 옮겨갔으며, 명조에서 죽었으니 그는 동이 사람이다." 지나 학자 서량지의 『중국사전사화』는 순임금을 동이족이라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순은 맥족(貊族:고구려를 건국한 종족)이며, 맥족은 곧 동이 부족을 형성하고 있는 하나의 자손이다."

주의 일등공신인 태공망이 동이사람임은 지나의 대표적 역사서인 『사기』에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주 무왕의 스승으로 은주혁명의 일등공신인 태공망 여상은 동이 사람이다. 周武王王師 殷周革命一等功臣 太公望呂尙 東夷" 이상과 같이 중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들이 지나족이 아닌 동이족임을 고찰하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언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

단군조선 중엽 제23세아홀 단군 때 은의 침입을 받자, 조선은 은을 즉각 격퇴시키고, 은의 회대지방을 빼앗은 후 그 곳에 조선인을 이주시켜 은나라를 포위하게 한다. 이 때 세운 나라가 바로 서(徐)국과 엄(奄)국이다. 지나 춘추시대를 보면 회대 지역에 제후국이 표시되지 않은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지역이 서언왕의 나라가 호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나라의 서언왕(徐偃王)은 군대를 일으켜 지나 36국의 조공을 받는 대서제국(大徐帝國)을 건설한 동이족, 아니 한민족의 대영웅이었다. 『후한서』 동이전 서문을 보면 서언왕과 서이족에 대해 자세히 쓰여있다.

"(주나라 3대) 강왕(康王) 때 숙신(조선)이 다시 왔고, 서이가 왕호(王號)를 일컫고 구이(九夷:동이족, 고구려의 전신이라고 함)를 이끌어 주나라를 쳤다. 이 때 서쪽으로 그 세력이 성한 것을 두려워하여 동북지방의 제후들을 나누어주고 서언왕을 시켜 이들을 주장하게 하였다."

서국의 뿌리는 앞에서 말한대로 단군조선이었다. 서기전 1263년 23세 아홀 단군이 중국 동부 해안지역을 평정하고 영고씨(寧古氏)를 서(徐)땅에 임명했는데 여기에 기원을 두고 있다. 지나 고대 문헌인 박물지(博物志)에는 서언왕의 출생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고대 우리민족의 출생신화인 난생신화 계통을 잇고 있다. 지나 학자들이 밝힌 바와 같이 난생 설화는 동이족 고유의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군(徐君)의 궁인(宮人)이 알을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물가에 갖다 버렸다. 어느 사람이 이것을 주워다가 따뜻하게 싸주었더니 이름을 언(偃)이라 했다. 궁인이 알에서 아이가 나왔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다시 데려다가 대를 잇게 하여 서군을 삼았다. 그는 신이한 사람이었다. 무원현 동쪽 십리에 서산(徐山)의 돌집으로 된 사당이 있다. 서언왕은 진(陳), 채(蔡)의 사이를 드나들면서 주궁(朱弓)과 주시(朱矢)를 얻었다. 이것은 하늘의 상서로움을 얻었다 하여 언왕이라 하였다."

이 기록은 한민족 고유의 설화 유형인 난생설화이며 부여의 동명왕(논형에 기록된 난생설화의 주인공)과 고구려 시조 고주몽의 설화와도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원을 뒤흔든 서이(徐夷) 회이(淮夷)가 고조선계또는 고구려계였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또 선진(先秦)시대의 동이와 고조선의 관련성을 확실히 입증하는 대목이다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