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21

大 東 夷(夷란? (道通意義라고 河上公이말함)

[스크랩] 大 東 夷(夷란? (道通意義라고 河上公이말함) new 조회(5)역사를 찾아서 |2007/07/24 (화) 18:09 공감하기(0) |스크랩하기(0) 大 東 夷 · 동이족 · 東夷 이해를 위한 중국 고대사 · 은왕조는 동이족 · 은왕조가 동이족이었다는 고증 · 상황오제는 모두 동이족 · 은왕조 그 이후 · 순임금이 동이족이었다는 근거 · 루시엘이 밝히는 동이족의 조상 욕단 · 황화문명의 주역은 고조선 · 천문학으로 고조선사 증명 · 한 민족의 뿌리사상 · 한민족의 일만년 역사 · 친일사학계비판 ·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우리겨레 · 실로 강대하였던 동이족 · 동이족이 아니라 동철족 · 금문신고 · 중국인의 역사뒤집기 東夷란?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에서) 은나라 때 인방(人方)이라는 이족(夷族..

고대사 2007.07.25

고조선 왕검성 위치는 하북성 창려다

공감하기(0) | 고조선 왕검성 위치를 입증하는 청나라 고지도상의 하북성 창려 다음은 청나라 고지도 중 하북성 창려의 위치를 표시한 것입니다. 고대나 청나라 때나 창려의 위치는 하북성 난하 유역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지도입니다. 근세에 중국인들이 역사왜곡을 위해 요령성으로 이동시킨 창려를 믿는 것은 자유이나 역사를 보는 시각은 바로 잡길 기대합니다. 하북성 창려가 위만조선의 왕검성이고 한 무제가 침략한 지역임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으며 이를 한반도로 가지고 오는 자들은 역사 사기꾼들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진실입니다. (한서지리지 원문) "왕검성 = 험독 = 하북성 창려" 원문을 읽을 줄 알면 어찌 아래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는가 ? 하북성에 있던 왕검성이 갑자기 한반도 평양으로 바뀌는 이유가 무엇인가 ..

고대사 2007.07.25

여러 해석의 단군조선( 壇君朝鮮) 의 역사 歷史 (펌

여러 해석의 단군조선( 壇君朝鮮) 의 역사 歷史 (펌) new 조회(4)역사를 찾아서 |2007/06/13 (수) 11:51 공감하기(0) |스크랩하기(0) 단군조선 壇君朝鮮 의 역사 歷史이중재/박민우 壇君朝鮮 제1기는 盤固桓因氏 부터 시작되어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 거방씨, 구황씨, 섭제씨, 연통씨, 서명씨, 거령씨, 구강씨, 초명씨, 탁광씨, 구진씨, 황신씨, 이령씨, 대괴씨, 귀외씨, 기호씨, 감자씨, 태봉씨, 염상씨, 개맹씨, 대돈씨, 영양씨, 무당씨, 태일씨, 공상씨, 신민씨, 기제씨, 차민씨, 진방씨, 하성씨, 회괴씨, 동호씨, 황담씨, 이광씨, 계통씨, 길이씨, 궤거씨, 희위씨, 호락씨, 사황씨, 소홀씨까지 44세를 이어오면서 60氏의 단군(桓因, 桓仁)이 존속했다. 역년 5038년간 이..

고대사 2007.06.13

단군조선의 역사 : 반고환인에서 고려까지...

단군조선 壇君朝鮮 의 역사 歷史[이중재] 단군조선의 역사 : 반고환인에서 고려까지...이중재/박민우 壇君朝鮮 제1기는 盤固桓因氏 부터 시작되어 천황씨, 지황씨, 인황씨, 거방씨, 구황씨, 섭제씨, 연통씨, 서명씨, 거령씨, 구강씨, 초명씨, 탁광씨, 구진씨, 황신씨, 이령씨, 대괴씨, 귀외씨, 기호씨, 감자씨, 태봉씨, 염상씨, 개맹씨, 대돈씨, 영양씨, 무당씨, 태일씨, 공상씨, 신민씨, 기제씨, 차민씨, 진방씨, 하성씨, 회괴씨, 동호씨, 황담씨, 이광씨, 계통씨, 길이씨, 궤거씨, 희위씨, 호락씨, 사황씨, 소홀씨까지 44세를 이어오면서 60氏의 단군(桓因, 桓仁)이 존속했다. 역년 5038년간 이다. 이부분은 책을 참고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처음으로 밝혀진 한민족사 494p 부록" 을 참고함. ..

고대사 2007.05.16

배달국 실존증거와 동이족의 개념

배달국은 환단고기외에 숙종때의 진본이 발견된 규원사화에도 환웅께서 박달을 다스리셨다고 언급이 되어있어 신빙성있는 사료입니다. 중국 하남 박물원에 소개된 “동이” -> 하남성 개봉시에 위치함(1927년 개원) 하남박물원(河南博物院) 东夷人是中华民族先民的主干部分 동이인(東夷人)은 중화민족 조상의 주요한 줄기부분(主幹)이다. 张发颖在《凤图腾东夷人及其文化贡献》〈《社会科学辑刊》2001年第2期〉一文中认为东夷文化 范围的遗存遍布燕山南北,包括辽宁阜新查海文化,沈阳新乐文化,山东大汶口文化,河姆渡文化 以及其后的赵宝沟、兴隆洼、牛河梁及殷商文化,东夷文化以凤为图腾,不是统一的文化体系, 而是对有记载以来生活在这地区先民的泛称,以凤为祖图腾,繁衍为以各种鸟为子图腾的北方凤图腾的 东夷先民,都是在燕山山脉东夷文化圈中发展起来的。从伏羲到夏商二代,起主导作用的..

고대사 2007.04.12

동이족의 대영웅 서언왕徐偃王

우리 민족을 일컬어 동이족(東夷族)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동이족은 '동방의 오랑캐'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이족의 참 뜻이 아니다. 『설문해자』를 보면 동이족의 뜻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동방의 큰 활을 쏘는 어진 민족' 그 이름 답게 고대 우리 조상들은 말 잘타고 활 잘 쏘았다. 또한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궁에서 석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동이족=한민족이라는 얘기는 과장된 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동이족의 한 일원임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중국사서는 단군조선,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을 동이의 나라라고 하였던 것이다. 동이족의 대영웅으로 우리는 지나(중국)의 공손헌원과 싸운 치우천왕(蚩尤天王:배달국 제 14세 한웅인 자오지 한웅)을 든다. 하지만..

고대사 2007.03.30

인류문명의 시원과 줄기는 모두 동이 東夷 에서 나왔다 !

인류문명의 시원과 줄기는 모두 동이 東夷 에서 나왔다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모두 동이 유산 / 창세기도 참전계경 베낀 것송호수 최근 일본 학자 오향청언 (吾鄕淸彦) 씨가 쓴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의 漢이라는 국호 자체도 옛날 3한 조선의 韓이라는 글자를 그대로 빌려 간 것에 불과하다" 고 말입니다. 우리의 역사가 대충 어느 정도 변조가 되었는가를 피부로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한사군(漢四郡) 문제만 보더라도 있지도 않았던 한사군을 평양에, 그것도 세 군데나 되는 평양 중에서 ..

고대사 2007.02.23

“韓- 日- 몽골의 공통된 뿌리는 쥬신족”

“韓- 日- 몽골의 공통된 뿌리는 쥬신족” “‘쥬신’이란 민족을 아십니까?” 이 생소한 이름의 민족이 한국은 물론 일본, 만주 등 동북아시아 민족들의 공통된 시원(始原)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구려 문제로 다시 불거진 한국고대사의 비밀을 풀어낼 새로운 가설이 등장한 것이다. 김운회(국제통상학) 동양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저서 ‘대쥬신을 찾아서’(전 2권·해냄)에서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을 연결하는 문명사적 벨트의 주역이자 공통의 민족적 시원으로서 이들 지역에 금속문명을 전파한 ‘쥬신’이라는 유목민족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삼국지에 숨어 있는 중화주의의 심각성을 파헤친 ‘삼국지 바로 읽기’(2004년)를 통해 중국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과시했던 인물. 그가 이번엔 역사학뿐 아니라 인류학, 신화학..

고대사 2007.01.19

한민족은 예맥족이 아니다

淸나라 皇帝에게 우리가 조상이 같음을 얘기할 것이다.[說淸帝 談同祖 규원사화(揆園史話) 만설(漫說)] 淸나라 황제와 祖上이 같은 것은 韓民族이 아니라, 李成桂다. 李成桂가 女眞族이라는 증거는 넘쳐난다. 李成桂가 女眞族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女眞族이 절대 우리나라의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다. 韓民族이 아닌 자는 우리나라의 統治者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尊桓(檀)攘胡를 중국은 尊王攘夷로 바꿔치기 한다]韓民族 아닌 자가 우리나라의 統治者가 될 수 있었다면, 李成桂는 全州李氏인 척 하지 않았고, 북애(北厓)는 揆園史話를 써서 女眞族을 韓民族으로 둔갑 시키고자 혈안이 되지 않았다. 韓民族 아닌 자가 우리나라의 統治者가 될 수 있었다면, 무엇보다 우리나라 영..

고대사 2006.12.07

배달이 중국 대륙에 있었기에 조선과 삼국이 그곳에서 건국했다

배달이 중국 대륙에 있었기에 조선과 삼국이 그곳에서 건국했다 (1) 1) 자오지 한웅은 중국 대륙의 서토를 정복했다 천문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百濟와 新羅가 건국 초부터 日蝕을 발해만과 揚子江 유역에서 관측 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百濟와 新羅가 어디서 옮겨온 나라가 아니라, 渤海灣과 揚子江 유역에서 건국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百濟가 갈라져 나온 高句麗 역시, 中國 대륙에서 건국할 수밖에 없었다. 高句麗의 초기 일식이 중가리아분지 및 大興安嶺山脈 이북 에서만 관측되는 것은 高句麗의 일식이 몇 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三國史記에 기록된 高句麗 일식은 高句麗가 관측한 전체 일식의 1~2 %에 지나지 않는다. 遼水는 우리나라의 국경이 아니었다. 遼西까지도 우리나라 땅이었기 때문이다. 朝鮮時代..

고대사 200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