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 32

고구려제국의 핵심강역은

고구려제국의 핵심강역은 어디?우리 역사의 진실은 국사책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연 900년 대제국 고구려의 영토는 어디까지였을까? 또 그 영토를 지도에 그려보면 과연 어떻게 될까? 우리 국민들에게는 무척이나 궁금한 사항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토의 변화가 수시로 있었던 고구려의 영토를 한 장의 지도로 확정지어 그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900년의 긴 사직에는 광개토태왕 같은 전성기도 있었지만, 동천왕 때와 같이 위나라 관구검의 침략을 받아 많이 위축된 적도 있었다. 그리고 당나라 고종이 언급했듯이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가 마치 개이빨(犬牙) 처럼 서로 얽혀져있어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며, 또 고구려는 직접 통치의 영역도 있었으나, 연방제국으로 상대국을 인..

삼국사 2008.07.28

세계 4대 도시의 하나였던 "서라벌"

고려때의 개경도 추정인구 50만에 [외국인 타운]이 존재할 정도로 국제적인 무역도시였습니다만, 신라 서라벌도 그에 못지 않게 대단했습니다.8세기 전세계 4대도시 는 콘스탄티노플, 장안, 바그다드, 그리고 신라 서라벌 이었습니다.'우리 고구려 바로알기, 해나라 ( http://haenara.net )' 에 올린 신라 인구 관련 글입니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전성기 때 수도에 17만 8936호가 있었다고 적고있습니다. 보통 1호를 5인으로 잡는데 이대로 17만 8936호를 계산하면 90만정도의 인구가 됩니다. (현재 울산광역시의 인구가 100만 정도) 아래는 신라 [왕경도(왕이 사는 도시 그림)]입니다...

삼국사 2008.06.27

''광서장족자치구''는 백제의 서부.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

그의 고향 '광서장족자치구'는 백제의 서부. 백제 영토는 어디까지? 성훈 칼럼니스트 3부는 장문이라 아래와 같이 나뉘어 연재됩니다. (3부) 대륙 백제의 영토 알려주는 '흑치상지' (4부)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여러 근거들 백제의 부흥운동 대륙과 해양을 주름잡던백제가 소정방의 기습공격에 졸지에 갑자기 도성이 함락되고 왕이 항복해 나라가 순식간에 망하게 되자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무왕의 조카 복신과 승려 도침이 주동이 되어 왜국에 볼모로 갔던 왕자 부여풍을 임금으로 세우고, 주류성(周留城)과 임존성(任存城)을 근거지로 하여 당에 대항한다. 이 때 당나라는 백제의 부흥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40만 대군을 파병한다. 당장(唐將) 손인사는 40만 대군을 거느리고 덕물도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물..

삼국사 2008.05.21

신라는 어떤나라인가?

1. 신라의 조상이 소호 금천씨(小昊金天氏)라 한다. =>三國史記 百濟本紀 第六 義慈王篇 新羅人自以小昊金天氏之後. 故姓金氏.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는 황제(黃帝)의 아들이다.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 BC.2578년)의 후손인 진시황제(秦始皇帝 BC.255년) 의 진(秦)나라는 감숙성(甘肅省) 천수현(天水縣)에 도읍하여 六國(魏 . 韓 . 趙 . 燕 . 楚 .齊)을 통일했다. 2. 신라는 그 선조가 본래 辰韓의 뿌리이다. => 梁書 新羅篇 新羅者其先本辰韓種也. 辰韓亦曰秦韓. 相去萬里. 傳言秦世亡人避役來適馬韓. 馬韓亦割其東界去之以秦人故. 名之曰秦韓. 其言語名物有似. 辰韓은 역시 말하자면 秦韓이라고 했다. 서로 거리가 만리(萬里)였다. 진(秦)나라인 진한(秦韓)이 망하자 동쪽으로 (조선,한)유민들이 몰려 와 서..

삼국사 2008.04.24

신라의 건국 시기와 강역, 신라의 영토는 어디까지인가?

대륙지도 한(韓)민족의 고대국가가 대륙에 있던 것을 [桓國의 歷史]에 나오는 포스트를 읽으면서 자주 인용되는 대륙의 성(省)지명을 기억할 수 있게 지도를 올립니다 10. 고구려(高句麗)등의 건국지 AD 55년의 대륙 대륙의 성(省)지명도 블로그 > 자료로 정리해본 한국고대사 http://blog.naver.com/casahoo/20008981881에서 지도 참조+책의 내용 첨부 지도10. 고구려高句麗)등의 건국지- AD 55년의 대륙가.고구려의등의 건국지졸본(卒本) (1)섬서성 빈현(陝西省 彬縣) [고구려의 건국지 BC58]눌견(눌見) (2)섬서성 순읍현(陝西省 旬邑縣)[고구려의 도읍지 BC27~ AD2]국내성(國內城) (3)섬서성 순화현(陝西省 淳化縣)[고구려의 도읍지 AD2 ~ AD209]평양(平壤)..

삼국사 2008.01.14

고구려 압록수가 대요하라는 증거

고구려*발해의 압록수가 "대요하"라는 증거지금 현재 중국 영토에는 "발해만"이라 불리우는 곳이 있다. 그 발해만은 고구려*발해의 압록수 하구와 연결되는 바다를 일컫는다. 압록수의 하구부분에 대해 "발해만"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병도를 비롯한 친일 식민사학자들(특히 서울대 출신)은 지금까지도 우리 역사를 축소*왜곡하고 있다. 중국인은 한자를 모른다 중국인은 고구려도 모른다 7) 일곱 번째 증거 (證據7) [반산현지 盤山縣志] [자치통감 資治通鑑] [자치통감]에 의하면, 당태종의 침공 때에 개전 초반에 장량(張亮)이 해군으로 비사성(卑沙城)을 습격했다. 비사성은 사면이 절벽이나 오직 서문으로 오를 수 있었는데 (其城 四面懸絶...唯西門可上) 정명진이 밤에 군사를 이끌고 가고 왕대도..

삼국사 2007.10.02

백제의 도읍지는 중국 하북성의 관미성 이었다!

백제 도읍지는 중국 하북성의 관미성! 수도 위례성은 이병도가 지정 " 온조왕은 북경에 원구단을 쌓았다"박병역 위원 [1]. 백제가 한반도 속에 존재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단독보도 제24편][플러스코리아]백제의 수도 [하남 위례성]이 우리나라 고대사서의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구당서(舊唐書), 후한서(後漢書) 등 중국의 어떠한 사서(史書)에도한반도 속에 존재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만 중국 대륙에서 건국되었던 대제국 백제를 한반도 속으로 얽어 맞춘 일본인과 우리 역사 왜곡의 주범자 이병도가 하남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 광주(廣州) 고읍(古邑)인 춘궁리(春宮里) 일대라고 주장하므로서 지금의 서울이 백제의 수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어떤 이는 풍납토성, 몽촌토성(夢村土城)이 위례성이라..

삼국사 2007.09.18

[스크랩] 신라가 대륙에 설치한 귀덕주 귀의현

[스크랩] 신라가 대륙에 설치한 귀덕주 귀의현 new 조회(3)역사를 찾아서 |2007/08/13 (월) 15:28 공감하기(0) |스크랩하기(0) ※ 신라가 설치한 귀의주 및 귀덕군, 귀의현의 위치(당서지리지)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다고 합니다. 한반도 안에서...과연 이러한 사건이 한반도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옛 기록을 보면 신라가 서기 732년에 귀의주 또는 귀의주 귀덕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현재의 해설대로 귀의현 또는 귀의주가 하북성에 있었을 경우에는 신라의 영토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삼성 지역 일부 및 하북성 지역까지 강역권으로 했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것이며, 이 귀의주 또는 귀의현 또는 귀덕군의 위치가 녕하성 북부 황하 연변에 있었다면 신라의 영토는 중원 대륙의 오충지에 있었..

삼국사 2007.08.14

[스크랩] [한민족 대륙사]기독교국가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을 지배했던 훈족

1.[한단고기-단군세기]흉노의 기원과 흉노의 조상"단군께서 열양(중국 북부지역)의 지방장관 색정을 흉노족의 지역에 봉하니 흉노의 조상이 되었다!"2.흉노족의 기원과 관련한 한단고기 기록의 사실성 고찰흉노와 몽고족은 북만주에 기원하여몽고지역으로 이동하여 세력을 키운후에유라시아초원을 지배한 북방유목민족으로우리 한민족계열의 민족이다(단국대 윤내현 교수)서양에서 스키타이라고 불리우는 흉노족은 본래 북만주지역에서 살다가 몽고지역으로 이동하여 세력을 키운후에 유럽까지 가서유럽전역을 두렵게 만든 우리 한민족이다!!유럽인들과 피가 섞여 혼혈족(투르크)이 된 민족이다!돌궐(터키) 등 투르크계 민족이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래서 터키나라가 우리 민족과 형제국이라고 역사교육에서 가르치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역사학자들은 흉노..

삼국사 2007.08.14

"가야는 천축국이다!"

[단독보도] "가야는 천축국이다!""조선의 천축국은 아세아 각국을 불국정토를 이루었다 "박병역 위원 [제 12편] 중국의 황하 문명은 BC 3500년경부터 황제가 등장하여 황금으로 장식된 거대한 궁궐을 짓고 찬란한 황금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현행 국사는 중국과 이웃한 고조선의 단군은 석기시대의 부족장이며, 우리나라의 역사가 매우 오래 되었음을 말해 준다.고 기술돼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국조 단군왕검이 개국한 BC 2333년부터 BC 108년까지 무려 2천여년의 역사는 공백 상태이며, 기원전 194년 위만이 준(準)을 몰아내고 고조선의 왕이 되고부터 비로소 철기문화가 확산되었다. 라고 어처구니없는 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 © 박병역 위원 한국의 모든 사람들은 일왕의 충견(忠犬:똥개) 이병도가 거짓..

삼국사 2007.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