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히데요시가 난을 일으킨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대동이 2008. 2. 1. 16:51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난을 일으킨 나라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한민족사] 일본에서 본 고려제국사 (5)ㅣ일본 어디를 가 봐도 조선은 없고 고려만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백제사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난(亂)을 일으킨 나라는 조선(朝鮮)이 아니라 고려(高麗)

[한민족사] 일본에서 본 고려제국사 (5)ㅣ일본 어디를 가 봐도 조선(朝鮮)은 없고 고려(高麗)만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저번에 규슈(九州)를 답사하면서 저는 아리타(有田)와 미야마(美山)라는 도자기 마을을 답사일정에 집어넣었습니다. 두 마을 다 산골짜기에 형성된 정말 아름다운 곳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반도에서 끌려간 도공들에 의해 만들어진 마을이지만 일본의 미(美)를 만끽하기에 이보다 좋은 곳을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그 곳에 간 이유는 단지 한반도에서 끌려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도자기 마을을 보고 도자기를 감상하기 위함만은 아니었습니다. 이 마을들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세계의 역사를 바꾼 마을이며 아시아의 근대화에 있어 반듯이 집고 넘어가야 할 마을입니다.

흥미를 끄는 것은 이 두 마을 사람들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전까지만 해도 다 우리와 같은 성씨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리타(有田)에는 이삼평(李三平)이라는 도공이 도자기를 굽기 시작해서 형성된 곳이고, 미야마(美山)에는 아직도 심씨 성을 가지고 14대를 이어오는 심수관(沈壽官)씨가 살아 있습니다. 미야마(美山) 출신으로 전후 처리를 통해 일본과 천황을 구하고 대신 감옥에서 숨진 도고 시게노리(東鄕茂德) 외무대신은 원래 박무덕(朴茂德)이라는 우리식 이름을 가지고 네 살 때 까지 살았던 도공의 후예입니다.

▲ 미야마(美山)에서 심씨 성을 가지고 14대를 이어오는 심수관(沈壽官) 도공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 © 백제사

우리가 아는 반도에 있던 나라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제 사회라 들었는데, 공(工)에 해당하던 사람들도 성씨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의 대다수였던 농(農)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성씨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씨가 구한말에 가서나 일반 백성도 가졌다는 말이 얼마나 국민을 속였던 일부 사이비 진보들의 행태였는가를 다시금 알게 됩니다. 아울러 고려제국이 얼마나 평등했던 나라였는지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성씨를 갖고 조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것은 계급을 떠나 국민 대다수가 이어온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면 미야마(美山)에는 단군(檀君)을 모시는 신사가 있습니다. 고려인들은 이 신사를 옥산궁(玉山宮)이라 해서 지금껏 왔는데 최근에 일본에서는 이를 옥산신사(玉山神社)라 해서 격을 낮추고 있더군요. 신사에 올라가면서 쓰여진 것을 보니 어느 곳에는 “궁(宮)”이라 하고 어느 곳에는 “신사(神社)”라 합니다. 아직도 이를 둘러싼 팽팽한 세력대결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군을 모신 신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측 안내서에 의하면 1605년에 조선의 시조인 단군을 모시기 위해 창건되었다고 정확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단군을 시조로 모시고 예를 갖추는 것은 단군 이래 우리 한민족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던 것입니다.

▲ 미야마(美山)에 있는 단군(檀君)을 모시는 신사 - 옥산궁(玉山宮) © 백제사

저는 단군을 모신 곳을 고려신사(高麗神社) 근처 성천원(聖天院)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태왕 고려(太王 高麗) 왕족이었던 약광(若光)의 무덤이 있는데, 뒷산에 재일동포들이 남과 북을 뛰어넘어 같이 성금을 모아 단군상을 비롯한 한민족 위인들의 조각상을 만들어 기리고 있더군요. 한쪽으로는 재일동포들의 무덤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 고려신사(高麗神社) 근처 성천원(聖天院) 뒷산에 모셔져 있는 단군상 ©백제사

정작 일본에서 단군께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단군상의 목을 치질 않나 단군은 거짓이라 말하는 것이 무슨 대단한 진보적 인사가 되는 길인 것처럼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단군이 없으면 재일동포들의 구심은 어떻게 하라고 하는 짓꺼리들인지 모를 일입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아리타(有田)에는 이삼평(李三平)을 모신 신사가 두 곳이 있습니다. 안내서에는 보통 도잔신사(陶山神社)만 알려줍니다. 저도 물론 이 신사를 방문했습니다.

▲ 도잔신사(陶山神社) 입구에 있는 고려개(高麗犬) ©백제사

도잔신사에 들어서면 아주 큰 고려개(高麗犬)가 우리를 반깁니다. 이 고려개는 도자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고려개를 지나 산으로 올라서면 역시 도자기로 만들어진 토리이(鳥居)가 우뚝 서 있습니다. 그 토리이를 지나면 본당이 나옵니다. 저는 이 본당에서 이삼평(李三平)과 고려 도공들을 위해 참배를 했습니다. 이 본당을 지나 산 정상에 올라가면 이삼평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본 아리타(有田)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이 도잔신사 외에 이삼평(李三平)을 모신 신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고려신(高麗神)을 모시는 이시바신사(石場神社)입니다. 고려 도공들과 이삼평을 위해 만들어진 작지만 귀한 신사입니다. 신사 본당 옆에는 이삼평 조각상도 만들어져 있습니다.

▲ 이시바신사(石場神社)에 있는 이삼평(李三平) 조각상[左]과 고려신(高麗神)에 대한 안내판[右] ©백제사

그런데 왜 “고려신(高麗神)”인가?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는 당연히 “조선신(朝鮮神)”이어야 할 텐데 말이죠? 이건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당시 반도에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 아니라 고려였다는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가고시마시(鹿児島市)에 가면 “고려마을(高麗町)”이 있습니다.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 고려마을은 메이지유신의 핵심에 있었던 마을입니다. 아시아의 근대를 논하면서 이 마을을 빼고는 아무 것도 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고려마을은 어느 고려로부터 유래된 것일까요? 이 고려마을이 저 멀리 태왕 고려(太王 高麗) 시대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백제(百濟)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태왕 고려 세력이 백제를 무너트리고 일본의 최남단으로 왔을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가고시마현(鹿児島県),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사쓰마번(薩摩藩)이 이 지역에 설치되어 있었고 가고시마시(鹿児島市)는 번주(藩主)가 살았던 번(藩)의 중심지였습니다. 고려 도공들이 모여 살았던 미야마(美山), 당시 나에시로가와(苗代川)는 물론 사쓰마번(薩摩藩)에 속해 있었으며 고려마을(高麗町)은 이들과 관련짓는 것이 합당합니다. 그러면 왜 “조선마을(朝鮮町)”이 아니고 “고려마을(高麗町)”일까요? 이 것 역시 당시 반도에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 아니라 고려였다는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반도에 있었던 나라가 조선이 아니라 고려라는 결정적인 증거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반도에 있었던 나라를 고려(高麗)로 적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열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는 이상 나라 이름을 잘 못 적을 리 없는 것이지요.

아래 사진은 KBS HD 역사스페셜을 보고 아니키(anakii)님께서 캡쳐하신 사진들입니다.(사진 공개를 허락하신 아나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분명 고려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림으로 볼 때 고려제국의 영토가 그림에 나타나는 전 영역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일본은 당시 고려에 복속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번 글에서 설명했다시피 임진년에 있었던 그 사건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다물넷(www.damool.net)의 이순진 장군 편을 보면 당시 왜(倭) 반란군이 토벌군을 조선군(朝鮮軍)이 아니라 고려군(高麗軍)이라 불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소유했던 고려제국도(高麗帝國圖) ©아나키님 홈페이지(www.anakii.net)
▲ 그림에는 분명히 고려(高麗)라 적혀있다. ©아나키님 홈페이지(www.anakii.net)
▲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반란군 장수들에게 보낸 서한 ©아나키님 홈페이지(www.anakii.net)

아울러 저는 가고시마에 있는 레이메이관(黎明館)의 임진왜란 전시관에서 “고려국(高麗國)”이라 쓰여진 탁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이 안 되었고, 판매하는 자료집에도 들어 있지 않아 이 글에 공개가 불가한 것이 참으로 유감입니다. 시간만 좀 있었다면 탁본의 내용을 적어 왔을 텐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가고시마에 가실 일이 있으신 독자 여러분께서 필히 그 탁본을 확인하시고 내용도 적어 오셨으면 합니다.

분명한 것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한반도, 아니 저 엄청난 영토를 가진 나라를 고려라 분명히 적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한반도에서 끌고 온 사람들을 고려인이라 불렀으며, 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고려마을이라 하였고, 또한 그들이 죽으면 고려신으로 신사에 모셨던 것입니다.

비단 열도 사람들만 고려라 칭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황진이 선생이 글로 쓰셨지만 대김제국(大淸帝國)에서는 한반도에 존재했던 국가가 만든 국기(태극기의 원형)를 고려국기(高麗國旗)라 불렀습니다.(“淸”을 왜 “김”으로 읽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또한 대한제국 (大韓帝國) 선포식에서 보여준 고종 황제(高宗 皇帝)의 인식은 분명 고려 계승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관련기사]

시대소리 황진이 “한국史, '조선은 고려後 건국' 맞나 ?”
http://news.sidaesori.co.kr/sub_read.html?uid=749&section=section5

조선일보, “가장 오래된 태극기 그림' 발견” 2004.01.26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401/200401260260.html


물론 역성혁명으로 왕조의 성씨가 바뀔 수 있습니다만 국가의 명칭은 계속해서 고려였던 것입니다. 단군 조선(檀君 朝鮮)의 2천여년 역사 과정에서도 왕조가 바뀐 적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여(大夫餘)로 국명을 쓰기도 하였지만 지속해서 조선이라는 국가로 이어졌습니다. 그러한 역사와 같은 경우입니다.

이는 나중에 더 다루기로 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 한민족(韓民族)에게 왕조는 하늘이 내린다는 의식이 지배하기에 왕조를 계승하려하지 전대 왕조와 단절하려 하지 않습니다. 종묘(宗廟)에 공민왕(恭愍王)을 모신 신당이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성계(李成桂)가 황제(皇帝)로 등극할 수 있었던 공식적인 대의명분은 공민왕(恭愍王)을 이을 자손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고려가 1,000여년 이어져 왔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왜 서양지도에 Choseon(조선)은 없고 Coree(고려)만 등장하는지도 그 이유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조선이 없고 고려만 있었기에 그러한 것입니다. 왜 고종 황제가 대한제국의 알파벳 표기를 Coree로 사용하였는지도 명쾌해 집니다.

이 고려는 강성할 때는 아시아 전역을 통치하였던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약해졌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확실히 위축하게 됩니다. 그러하더라도 최소한 열도를 지방(Jipan)으로 두었던 황제의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 고려가 추모 태왕(鄒牟 太王)께신 세우신 태왕 고려(太王 高麗)와 구별해서 황제 고려(皇帝 高麗)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열도가 일본(日本)으로 독립해서 이탈해 버립니다. 저번에 설명했지만 이 메이지유신 세력은 임진왜란 세력의 후대 세력들입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 고려는 국왕 고려(國王 高麗)로 완전히 위축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자 우리 한민족의 또 하나의 나라였던 대김제국(大淸帝國)이 한민족 형님의 나라로 올라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영화는 오래 가지 못하였고 몰려오는 서구세력에게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 시기에 대한제국이 태동하게 됩니다. 대김제국(大淸帝國)을 대신해 한민족의 중심의 나라가 되고 싶었던 고종 황제와 고려인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지요.

이제 역사가 조금 보이기 시작합니까? 황당하다고 보시는 독자들께서도 계시리라 봅니다. 물론 저의 역사 해석에 의문을 가지시는 독자들께서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일본이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를 “고려”라 불렀는지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반박 없이 무조건 저만 틀렸다는 주장은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왜 한반도에 있던 나라가 고려인지는 에도성((江戸城)의 비밀을 설명할 때 다시 한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다음에는 조선제국에 대한 설명입니다. 독자들께서도 조선제국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백제사(百濟寺), 시대소리 일본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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